청교도 묵상의 이론과 실제

이 책을 읽으실 그리스도의 지체들에게 먼저 드리고픈 이야기

수 없이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시대, 아니 어쩌면 유투브의 홍수로 인해서 안그래도 턱 없이 부족한 독서량이 더욱 적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저같이 부족한 사람이 또한 권의 책을 더하는것 같아 많이 망설이기도 했지만, 다른 주제들에 비해서 좀처럼 간절한 마음의 부담이 사그러 들지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에게 끼칠 유익을 생각하며 책을 펴내기로 결심을 했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던 차에 팀처치가 개척 되었고, 우선적으로 목회의 현장에서 필요한 핸드북의 형태로 출간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 주제에 대한 구상은 미국 동부 보스턴에 위치 하고 있는 고든 콘웰 신학교의 목회학 박사과정(부흥과 개혁: 회중의 삶을 갱신하기-Revival & Reform: renewing congregational life)에서 논문을 대신 해서 제출할 책을 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논문의 개요는 ‘한국교회 제자 훈련의 보안 내지는 대안으로서의 청교도 경건훈련’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목회적인 상황때문에 2년 간의 공부를 마치고 휴학을 한 기간 중에 너무나 아쉽게도 지도 교수님(Dr. Garth, Rosell)께서 은퇴를 하시는 바람에 제가 속해 있었던 과정(track)이 아예 없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기간 동안의 독서와 지도 교수님과의 매우 인상적인 만남과 가르침을통해서 이 주제에 대한 큰 자극과 충분한 격려를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인자한 표정과 부드럽지만 매우 강력한 음성으로 한 책을 소개해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는 그 책을 손에 들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책이 저의서재에 있는 모든 책들 중에서 가장 큰 보물입니다.” 그 책의 이름은 청교도들의 기도와경건에 관한 글들을 모아서 편집해 놓은 ‘비전의골짜기’(The Valley of Vision)라는책이었습니다.

저는 즉시 존 웨슬리의 역사적인 흔적이 남아 있는 조지아의 감리교 수양관에서 이 책을 주문했습니다. 마치 찬송가 책과 같이 멋스러운 가죽 양장본 이었는데, 잠시 살펴본목차의 내용은 더욱 고상하고 가슴 설레게 하는 주제들이 열거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 교회로 돌아와서 즉시 가장 눈에 들어오는 주제들을 번역해서 마지막 양육과정 이었던 ‘청교도 경건훈련반’의 교재에 삽입해서 성도들과 함께 낭독하고 그 내용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도 그 글을 읽어 나가면서 함께 연발 했던 감탄이또렷이 기억납니다.

제가 이 책을 쓰는 가장 일차적이고 중요한 목적은 저를 비롯해서 제가 섬길 성도들, 혹은 이 책을 읽으실 그리스도인들이 학식과 경건에 있어서 너무나도 심오하고 탁월했던청교도들의 수준까지는 아닐지라도, 그들이 남겨준 이 경건한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소화해서 그리스도인들 각자가 그들만의 비전의 골짜기에 머물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목회자들의 목양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너무나 과도할정도로 목회자의 설교와 사역에 의존하는 신앙생활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한 주간 동안의 새벽기도회, 수요예배, 금요 기도회를 비롯한 주일 예배와 소그룹 모임, 제자훈련을 비롯한 수 많은 훈련 프로그램들, 또한 온라인으로 듣는 설교 까지를 생각해 본다면, 성도들 각자에게 주어지는 말씀의 양은 지나칠 정도로 많습니다. 문제는 두 가지인데, 첫째로 그것을 공급하는 쪽의 입장에서 그 내용이 영혼의 건강과 성장에 도움을 줄수 있는 양질의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느냐 하는 것과, 둘째로는그것을 수요하는 입장에서 그 내용을 잘 소화 흡수해서 그의 영혼이 건강한 자양분으로삼을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의 이러한 고민은 실제로 제 자신의 신앙생활을 포함해서 오랜 부교역자 생활과 9년여 동안의 담임목회를 통해서 실감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제껏 이해 하는 한, 청교도 경건의 정수는 ‘묵상’ 이며, 그들에게 처해 진 상황 속에서 많은 묵상의 주제들이 있었지만, 매우 뚜렷하고 핵심적인 묵상의 주제는 ‘참회(confession)-최초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회개(repentance) 이후에도 신자 안에있는 부패성으로 인해서 성화가 종결 되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는 자신의 죄들을돌이킨다는 의미에서의 회개를 일컫는다<저자주>-’ 였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묵상의 과정을 통해서 진실한 회개에 도달 하려고 했고, 그 지점에서 자신들의 마음이 깨뜨려지며 녹아 내리는 것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그 곳이 바로 그들의 비젼의 골짜기였고, 그 지점은 정확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마주하는 것이었으며, 그래서 바로 그 지점에서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을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은사이신 김남준 목사님의 가르침에 탄복하고 늘 감사하면서도 가장 그를 존경하고 본 받고 싶은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는 언제나 자신이깨뜨려 지기를 간절히 소망 하는 경건의 열망을 지닌 훌륭한 그리스도인 이라는 사실입니다. 언젠가 그의 서재를 노크 했을때, 그의 눈가는 많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고, 그의눈은 거의 충혈된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저는 바로 그 지점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실제적으로 경건한 삶을 살아갈수 있는 출발점이 무엇인지를 확신하곤 했습니다.

저는 청교도들의 경건의 정수가 묵상 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 그들의 묵상과 기도를 대하면서 확신하게 되는 그들의 묵상과 깊은 기도의 핵심은바로 자기 자신을 깨뜨리는 참된 회개였습니다. 회개가 없는 신앙생활 만큼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사실, 우리의 경험에서 알수 있듯이 신자가 지속적인 범죄 속에 거하게 되면 그가 회개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회개를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한 현상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적신호 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 속에서 자신이 깨뜨려지는 참된 묵상과 기도가 없이는 진정한 회개에 도달할 수 없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 세상에 아무런 흠도없고 점도 없는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하지만, 죽을때까지 정통한 기독교 진리에 대한묵상과 기도 속에서 자기를 깨뜨리며 몸부림치는 경건의 실천속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가기를 힘쓴다면 그는 그래도 좀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어갈 것입니다. 참된 경건의 원동력은 참된 회개이며, 그러한 종류의 회개를 실천하는 과정과 경험들을 자신의 시대에 실천하며 남겨준 위대한 청교도들의 유산이 바로 묵상의 실천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청교도들이 묵상을 주제로 하는 글을 남겨 놓았습니다. 이 글을 쓰는유일한 목적은 현재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묵상의 일에 가장 열심이 있었고 그들의 시대에 이 거룩한 의무의 결과들을 만들어 냈던 청교도들의 유산을 소개하고제 자신의 경험과 통찰을 함께 나누면서 어찌하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 하는자, 곧 경건의 모양 만이 아니라, 진정한 경건의 능력으로 좌우하여 우리를 만드신 목적대로 살아가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복 되신 하나님, 영원한 우리의 아버지께서 이 책을 사용 하셔서 그리스도인의 이 거룩한의무에 대한 이해와 절실한 필요성을 여러분들의 마음에 새겨 주시기를 간곡히 빕니다.

2024년 가을, 캘리포니아 에너하임에서

팀처치와 함께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있는 박헌준 목사


Ⅰ. 묵상이론 가이드

경건과 묵상

‘경건’으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 ‘piety’(파이어티)는 라틴어 ‘pietas’(피에타스) 에서왔는데, 이 라틴어는 전통적인 라틴어 용례에서 복합적인 표현이었습니다. 그것은 고차원적인 로마의 미덕이었는데, 피에타스를 겸비한 사람은 신들, 나라, 부모, 그리고 친족에 대한 그의 책임을 존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엄격한 의미에 있어서 피에타스는 한 아들이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일종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단어의 기원은 한마디로 아버지를 비롯한 어떤 권위에 대한 사랑, 그리고사랑하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특별히, 기독교 신앙의 세계에서 '경건' 이란 말의 성경적인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표현은 특별히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를 경외함’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 신명기를 살펴보면, 모세를 통하여 알려주신 여호와를 경외 하는 자의 구체적인 특성을 크게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말씀을 잘 듣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청종)이며, 셋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곧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것입니다.

이것을 크게 다시 둘로 보자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십계명의 두 기둥, 곧 예수님께서 “이 두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40)고 말씀 하셨던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여호와를 경외하는자’ 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곧 경건한 자는 스스로 자신을 경건 하다고여겼던 바리새인처럼, 자신의 속과 겉이 다른 이중적 특성을 가지고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두려워 하지도 않고, 타인을 정죄하는 인격적, 삶의 특성을 가진 자와는 그본질과 삶의 질이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선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 지식을 기반으로 하나님을 향한 좋은 두려움과 공경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매우 자연스럽게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그렇게 사랑 하는 하나님께서 명령 하신 것을 지키려는 선한 의지를 가진 자, 그래서 결국은 그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자, 그가 바로 여호와를 경외 하는 자요, 경건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은 그렇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경외함을 받으신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이 언제나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다윗은 그의 회개시중의 하나인 시편 25편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축복을놀랍게 열거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곧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르치시겠다고 말합니다. 둘째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영혼은 평안히 거한다고말합니다. 셋째로,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 하겠다고 하는 물질적인 복도 언급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복은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여호와의 친밀함이 있고, 그의 언약을 알게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경건한자,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영적인 복들과 물질적인 복들, 그리고 반복적으로 그의 자손들에게 까지 복을 베풀어 주시겠다는 약속이 반복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신을 경외하기를 원하시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